영어 조기 교육 과연 이대로가 옳은 것인가?
▲ 경제 칼럼리스트 김상국 경희대 교수
(산업경영공학과)며칠 전, 내 개인적으로는 너무 충격적인 영어 조기교육 프로그램을 보았기 때문에 이번 회에서는 경제와는 다른 얘기를 해 보겠다.
그 프로그램은 태국의 산모들이 임신운동 중 하나로 방을 빙빙 돌며 영어방송을 듣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뱃속의 태아가 영어방송 소리를 듣고 태어나면 영어를 쉽게 배울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님들의 지극 정성 모습도 보이지만 무지가 가져오는 안타깝고 애절한 느낌도 함께 들었다. 그러나 이런 일은 비단 태국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불과 몇 달 전 외국인 학교를 불법 입학하여 사회적으로 문제가 됐던 사람들의 얘기를 보지 않았던가?
본인은 이번 글에서 ‘나의 의견이 옳다 그르다는 말하지 않고, 다만 본인의 생각과 경험을 말하고 독자들의 판단과 선택’을 원할 뿐이다.
영어는 중요하다. 영어는 선진된 지식과 경험을 남보다 빠르게 배울 수 있고, 때로는 이것이 출세와 돈 버는 데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중국이 G2가 된다고 하지만 모든 부(富) 창출의 원천이 되는 과학과 기술은 앞으로 상당기간 또는 영원히 미국을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영어는 앞으로도 중요할 것이다. 80년대 내가 공부한 미국 위스콘신대학에는 한국 유학생이 약 200 쌍 정도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학생이 30대여서 10살 이하 자녀들이 한두 명은 있었었다. 당연히 자녀 교육은 큰 문제였고, 그 중에서도 영어교육이 중요했다.
유학생들의 영어교육은 크게 세 부류가 있었다. 자녀가 빨리 영어를 배우게 하기 위해 집에서도 영어만을 사용하는 집, 집에서는 우리말을 사용하고 집밖 학교에서는 영어를 사용하게 하는 집, 나머지는 별 생각 없이 영어와 우리말을 함께 사용하는 집이었다. 나도 당시에 유치원 다니는 딸과 세 살배기 딸이 있었기 때문에 영어교육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뾰족한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묘안이 떠올랐다. 그것은 곧 유대인인 지도교수에게 물어보는 것이었다. 당시 지도교수는 나와 나이가 비슷했기 때문에 비교적 자유스런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었다. ‘영어를 잘 가르치기 위해 집에서 영어만 써도 되느냐?’는 나의 질문에 평상 시 웃음이 많던 지도교수가 정색을 하며 하는 말은 “It's a beyond the question. If you do not teach your own language, then you will lose your children, and will destroy your children's future.” 이었다.
번역하면 “너의 말은 질문의 가치도 없는 말이다. 네가 너의 모국어를 가르치지 않으면 너는 너의 자식을 잃어버리는 것이고, 네 자식의 미래를 망치는 것이다.”라는 내용이다. 공부하는 사람들은 비교적 극단적인 표현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의 질문은 ‘질문의 가치도 없는 말’이라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지도교수의 설명은 이러했다. “잘 들어주기 바란다. 인간은 16세까지는 6개의 언어를 모국어로 배울 수 있다. 모국어는 그 말을 들을 때, 자신이 익숙한 다른 언어로 무의식중에 바꾸어 해석하지 않고 그 언어 그대로 이해하는 언어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은 6개의 언어를 모국어로 배울지라도 확실한 모국어가 있을 때 사람의 언어중추가 발달하여, 다른 언어를 더욱 잘 배울 수 있다. 그리고 네가 틀린 엉터리 영어로 자식을 훈계하면 네 자식이 네 말을 듣겠느냐? 그래서 자식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이었다.
쉬운 말로 해석하면 우리말을 잘 하도록 집에서 가르치면 영어도 훨씬 잘 배우고, 자식도 제대로 키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즉 우리말을 잘하는 사람이 영어도 잘하고, 사람도 올바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내가 얼마나 기뻤던지, 그때의 환호작약했던 기분이 지금도 생생하다. 나는 약간 맹목적인 애국적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 이후부터 우리 집에서 영어는 사라지고 즐거운 우리말만 남게 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을 경험했다. 우리아이가 영어로 된 국기에 대한 맹세와 주기도문을 어떻게 그리 잘 외우는지. 그리고 당시 영어만을 사용했던 집 아이들은 아직도 우리말을 더듬거린다. 나는 이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 준 지도교수에게 지금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